이종성 기자의 <야구의 나라>를 읽고 있는 중기 : 야구는 어떻게 한국의 인기스포츠가 되었는가?
주제 : 야구는 어떻게 한국에서 인기스포츠가 되었는가?
작가의 분석 : 일제시대부터 명문 고등학교의 스포츠이자 친일파들의 문화자본이 바로 야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미군과의 야구 교류를 통해 엘리트들은 야구가 일본스포츠라는 비난을 벗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 즉 일본, 미국과 같은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두 국가의 인기 스포츠가 한국에 정착해서 엘리트 계층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실제로 친일 엘리트들은 고교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명문 고등학교의 야구부는 친일파의 재정적 지원 하에 육성되었다
야구부 출신들은 야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은행이나 총독부에 취업했고 스포츠 경험은 엘리트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야구를 잘하면 좋은 취업자리를 얻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고 선수생활을 하려면 일본인이 운영하는 야구단에 들어가야 했다.
-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과의 협력을 통해 친선야구대회를 열고 야구장비를 지원받았고, 조선야구협회를 창설하고 세계야구연맹에 가입했다.
야구인들은 야구가 일본 스포츠라는 오명을 벗고 싶어했고, 미군정은 야구를 통해 미국의 남한통치를 긍정적으로 홍보하고자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
- 휘문고보(현 휘문고) 야구부는 친일파 민영휘(명성황후의 조카)의 재정적 지원 하에 육성되었다
실제로 3천평의 연습장을 갖고 있었으며 고시엔 본선에서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의 야구부 편중 지원과 일반 학생들을 무리하게 응원에 동원하여 반발로 동맹휴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23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한 휘문고보 야구부는 적극적인 뛰는 야구를 통해 8강까지 진출한다.
도쿄제국대학 출신 엘리트이자 투수출신인 박석윤은 휘문고보 감독을 하다가 총독부 지원 하에 완벽한 친일을 하다가 1948년 반역자로 처형당한 이력이 있다.
- 일제강점기 조선 명문고 야구부의 선수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조선 선수 비중이 높은 휘문고보와 배재고보가 일본 고등학교와 경기를 하면 조선인들이 많이 구경을 왔다고 한다.
- 일본은 한국과 대만의 고등학교들이 고시엔 본선에 진출하는 것을 내선융화의 성공적 사례로 칭송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인들을 내선일체된 엘리트로 교육시키는 공립고보에 야구부가 많이 만들어졌다. (사립고보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게 많음)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공주고등보통학교(현 공주고)
모두 일제시대에 야구부가 만들어지고 60~70년대 고교야구의 본산이 되었다.
- 1924년 광주고보(광주일고) 가 일본 팀에 승리하자 분노한 일본인이 경기장에 난입하여 조선인 투수와 몸싸움을 벌였고 광주고보 선수들은 모두 유치장에 구금됐다. 2사 3루에서 광주고보 투수의 견제구가 빠졌는데 광주고보 3루수가 홈으로 돌진하던 주자를 아웃시키고 경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광주고보 학생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3개월간 동맹휴학을 벌였고 1930년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진다.
- 금융계 취업이 보장되어 있는 상업학교에는 조선인 학생의 비중이 높았고 야구부에도 조선 선수들의 활약이 컸다.
대구공립상업학교(현 상원고) 야구부는 조선인 선수 5명 중 4명이 핵심 주전으로 활약했고 한국어로 작전을 지시했다.
고시엔에서 상대 일본팀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한국어로 작전을 지시한 학교였고 1930년 고시엔 본선에서 1승을 거둔다.
하지만 대구상업이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했을 때 일본 기업들이 화환을 보냈고 야구부는 대구 신사에서 참배를 해야 했다.
- 일본 재벌 오쿠라가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만들어진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 졸업생들은 일제시대 친일 금융계 엘리트로 성장했다. 선린상업 야구부는 1933년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하는 등 명문팀이었는데, 대회 일주일 전에 반드시 신사를 참배해야만 했다. 당시 선린의 일본인 코치는 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우투좌타를 권하는 등 앞서간 지도법을 선보였다.
-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 야구부도 1936, 1938, 1939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하며 야구부를 발전시켰다.
- 독립운동가 손병희의 재종손인 손효준은 뛰어난 선수였지만 독립운동가의 친척이라서 항상 일본 경찰의 미행을 받았다.
이후 한큐전철이 만든 다카라즈카 야구단(해체 후 오릭스 버팔로스를 만듬) 손효준을 포함한 조선인 선수들이 입단해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반역자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 이영민(이영민 타격상의 그 이영민임)은 대일본동경야구구락부(현 요미우리)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월급이 잘 나오는 식산은행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경성 갑부의 사위가 되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굳이 미래가 불투명한 일본 프로야구에 입단하지 않았다.
- 한국 최초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 선수는 평양고보 출신의 박현명으로 오사카 타이거즈에 입단했다가 1년간 선수생활을 하고 월북했다.
....여튼 이런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야구의 역사가 궁금한 닮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재밌을거 같아서 써봄
아직 다 못읽었는데 끝까지 또 읽고 후기 써볼게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