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장 빨리 풀리는 것이 죄… 숫자 이상의 헌신 가치, 새 영웅이 KIA 뒷덜미 잡았다
최민준은 SSG 불펜 투수 중 노경은과 더불어 몸이 가장 빨리 풀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많은 공을 던지지 않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이 장점 때문에 간혹 손해를 보기도 한다. 갑자기 투수를 교체해야 할 상황에서 가장 먼저 호출되는 선수가 바로 최민준이다. 최민준으로서는 조금 더 여유 있게 몸을 풀고 나가면 개인 성적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최민준은 그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믿는다.
공교롭게도 그런 상황이 징검다리로 일어났다. 9일 대구 삼성전에서 이로운이 타구에 맞는 부상을 당해 투구가 불가능해졌다. 연장 승부 속에 이미 필승조는 마무리까지 다 소모한 상황이었고, 2점 앞선 상황에서 누군가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그 상황에서 허겁지겁 마운드에 오른 선수가 바로 최민준이었다. 비록 박병호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어쨌든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한두솔이 몸을 더 풀 시간을 벌어줬다.
11일에도 또 그런 상황이 나왔다. SSG는 1-0으로 앞선 2회 선발 박종훈이 선두 최형우에게 2루타를 허용한 것에 이어 이우성에게 투수 강습 안타를 맞고 쓰러졌다. 2루 주자가 홈을 밟은 상황에서 박종훈은 강한 타구를 왼 팔뚝에 맞았다. 다행히 던지는 팔이 아니었고, 정밀 검진 결과 타박상 판정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그 상황에서는 또 누군가 희생하며 공을 던져야 했다.
박종훈이 쓰러지자마자 최민준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몸이 풀리는 최민준이 예상대로 호출됐다. 부상 교체라 심판진과 KIA의 양해 속에 연습 투구를 조금 더 많이 가져갔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최민준은 경기 후 "안에서 거의 다 풀었다. 나가서 바로 던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크게 부담은 되지 않았다"고 웃어보였다.
이후로는 말 그대로 팀을 구해내는 역투를 했다. 최민준은 이날 2회 위기 상황을 추가 실점 없이 막아냈다. 3회 서건창에게 솔로포 한 방을 맞기는 했지만 팀 타선이 곧바로 역전에 성공하며 최민준의 부담을 지워줬고, 그렇게 5회까지 4이닝 동안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하며 도망가려던 KIA의 뒷덜미를 잡았다. 팀이 9-3으로 이겨 시즌 첫 승도 올라갔다. 해준 몫에 상응하는 결과였다.
이숭용 SSG 감독은 경기 후 "먼저 종훈이가 큰 부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면서 "민준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점짜리 피칭을 선보였다. 마운드에서 집중하면서 공격적인 피칭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이 감독이 최민준에게 기대하던 그 피칭이 그대로 나왔고, SSG도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을 바랄 투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몸이 빨리 풀리는 죄(?)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민준은 "이런 상황에서 올릴 수 있는 투수가 나라는 것을 보여드렸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라가는 것도 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면서 "예전에는 많은 이닝을 던져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계산을 하면서 던졌다. 그럴 때마다 결과가 안 좋았다. 그래서 그냥 한 타자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졌던 게 오늘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고 웃었다. 지난해 부상으로 밸런스가 깨져 제 궤도에 올라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최민준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